삼성 라이온즈/2005년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김응용 감독이 사임하고 선동열 수석코치가 감독이 됐다. 사임한 김응용은 구단 사장이 됐다.
한대화 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됐다. 신용균 2군 감독과 김종모 코치와는 재계약하지 않았다. 장태수 코치를 공석이 된 2군 감독으로 임명했다. 대구상고에서 감독을 하던 김한근을 2군 타격코치[1] , 前 KIA 타이거즈 투수코치 이상윤을 2군 투수코치로 새로 영입했다.
1.2. 선수 이동
2004년 시즌 후 최익성, 고지행 등이 방출됐다. 최익성은 SK 와이번스로, 고지행은 다시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권오원과 김문수가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군복무를 하게 됐다.
김한수, 신동주, 임창용이 FA로 공시됐다. 2004년 11월에 김한수는 4년간, 신동주는 3년간 재계약했다[2] . 임창용은 해외 진출을 타진하다가 잘 안 되면서 결국 앞서 둘보다 한참 늦은 2005년 1월에 삼성과 2년간 재계약했다.
그리고 FA로 현대 유니콘스의 심정수와 박진만을 영입했다. 이마양 트리오의 해체 후 2004년에 삼성 타선의 무게감이 떨어지면서, 삼성이 중심타선 보강을 위해 심정수를 영입한다는 설이 이미 2004년 시즌 중반부터 파다했다. 그리고 현대는 박진만만큼은 잔류시키려 했지만 자금난에 시달려서 결국 박진만을 잡지 못했다.
한편 둘을 영입하는 데만 무려 99억을 쓰면서 이 때부터 삼성은 '''돈성'''이라 불리게 됐다. 한편 현대는 어떻게든 자금을 충당하고자 보상금 규모가 더 큰 심정수쪽은 보상금만 받기로 하고, 박진만의 보상선수로 이정호를 선택했다. 당시 이정호는 부상으로 재활하다가 군입대를 앞둔 터라 삼성에서는 보상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는데, 그걸 알고는 현대가 쏙 채갔다.
1.3. 신인 지명
- 포지션은 지명 당시 기준.
- ※표시는 지명권 포기나 대학 진학으로 인한 지명권 소멸 등으로 입단하지 않은 선수.
- #표시는 대학 진학이나 유급으로 이후에 지명 당해가 아닌, 그 이후에 입단한 선수.
곽동훈은 삼성과 입단 계약을 체결한 후 병역비리에 연루돼 바로 현역병으로 입대해 포병으로 군복무를 했다.
1.4. 외국인 선수
케빈 호지스, 멘디 로페즈 둘다 재계약을 포기했다. 호지스는 이닝 소화에 비해 승운이 안 따랐고, 로페즈는 삼성 입단 후 무릎 부상으로 지명타자로 활동했지만 플레이오프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부진했다.
대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출신 루서 해크먼과 주니치 드래곤즈 출신 마틴 바르가스를 영입했다. 두 우완투수 모두 빠른 강속구를 가졌다고 평가받았다.
2. 전지훈련
1월 18일부터 3월 9일까지 괌과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이 때부터 괌-오키나와를 거치는 전지훈련 체제가 자리잡았다.
3. 정규시즌
캐치프레이즈는 "라이온즈의 열정! 팬의 함성! 2005 V3!"로 발표되었다. 이전까지 2002년이 구단 첫 우승이 었고 그 사이에 우승이 없었는데 웬 V3 할 수 있겠지만 사실 1985년 KBO 우승팀에 엄연히 삼성 라이온즈가 올라가 있었다. 이 우승을 구단에서 부정하다가 이 해부터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진만의 영입으로 전년도 주전 유격수였던 조동찬이 3루수[6] 로, 3루수였던 김한수는 1루수로, 1루수였던 양준혁은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옮겼다. 심정수는 비록 현대 시절만큼의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홈런 28개로 팀내 타자들 중 홈런 1위를 했다. 백업 내야수였던 강명구는 이 해부터 붙박이 대주자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투수진에서는 전년도 정규시즌 MVP였던 배영수는 훌륭한 기록에 비해 11승 11패로 승운이 따르지 못했지만, KBO리그 최초 무사사구 완봉승을 기록하는둥 여전히 에이스로 굳건했지만, 야심차게 영입한 루서 해크먼은 3승 6패 4.80의 평균자책점으로 조기에 퇴출됐다. 마틴 바르가스도 10승 8패 5.06의 평균자책점으로 어찌어찌 10승은 달성했지만 선발투수로서는 낙제였고, 그나마 해크먼 대신 영입한 팀 하리칼라가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이 해 돋보인 투수는 다름 아닌 신인 오승환. 오승환은 전지훈련 때부터 일찌감치 중간계투로 낙점 받아 정규시즌에서도 엄청난 구위를 보였고, 마무리 투수였던 권오준이 여름 들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급기야 권오준과 보직이 맞바뀌어 마무리가 됐다. 이 해 오승환의 성적은 10승 1패 16세이브 11홀드 99이닝을 소화하며 ERA 1.18 , 역대 KBO 선수 중 처음으로 한 시즌 10승 10세이브 10홀드를 기록했다. 신인답지 않은 강심장에 압도적인 구위로 신인왕은 물론이고 한국시리즈 MVP까지 수상했다. 이외에 박석진과 안지만도 각각 홀드 2위와 3위를 기록하는 등 불펜진에서 활약하였다.
비록 선발진은 예년만큼 힘을 못 썼지만 오승환을 앞세운 계투진의 활약으로 예년에 비해 투타에서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이면서 74승 48패 4무로 정규시즌 1위로 시즌을 마쳤다.
3.1. 선수 이동
5월 말 김현욱이 은퇴를 선언했다. 평소 무릎이 좋지 않았던데다 2004년 7월에 오른쪽 팔꿈치 인대 파열로 2군에서 시즌을 마쳤는데, 2005년이 돼서도 좀처럼 팔꿈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던 것. 6월 2일에 공식 은퇴식을 치렀고, 이후 1군 불펜 투수코치가 됐다.
7월 24일 신동주가 KIA 타이거즈의 최용호를 상대로 트레이드됐다. 삼성은 중간계투진을 보강하려 했고, KIA는 외야 백업을 보강하려 했었다. 그나마 신동주는 트레이드 후 2년간 1군에서 20경기 출장했지만 최용호는 트레이드 후 2년간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그대로 은퇴했다. 역대 5번째로 FA 계약 선수가 계약 첫 해에 이적한 트레이드로, 보기 드문 트레이드였음에도 잘 회자되지도 않는 루즈-루즈 트레이드.
4. 포스트시즌
두산 베어스를 4전 전승으로 꺾었다. MVP는 오승환이 수상했지만, 김재걸의 활약도 뛰어났다. 자세한 경기 결과는 2005년 한국시리즈 항목 참조.
5. 선수별 개인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 투수는 이닝이 많은 순서대로, 타자들은 타수가 많은 순서대로.
- 시즌 중 이적한 선수들은 당해 삼성 소속 성적만 기록.
5.1. 투수
- 우완
- 좌완
5.2. 타자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6. 수상 및 기록
- 진갑용 :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1] 김응용이 감독이 되면서 영입한 상태였는데 중간에 해임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2] 정작 시즌 중 최용호와의 트레이드로 KIA로 이적했다.[3] 고려대 진학으로 지명권 소멸. 2009년 드래프트에 재참가했다.[4] 1년 유급 후 2006년 입단.[5] 과거 1996~1998시즌에 현대의 박정현이 재활 때문에 실전등판이 불가능해지자 배팅볼 투수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그래도 박정현은 몇 경기나마 1군 경기에 등판했었다. 그에 반해 백준영은 1군 통산 4경기 등판이 전부고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8년 시즌 후반부에는 아예 경기보조요원 신분으로 1군 선수단과 동행했다.[6] 전년도에 주전 유격수로서 가능성을 보였던 조동찬이 3루수로 이동하면서 굳이 박진만을 영입했어야 했냐는 반응도 있었다. 다만 원래 2002 신인 지명 당시 조동찬을 3루수로 지명했을 정도로, 원래 팀에서는 포스트 김한수로 조동찬을 점찍었다.